[오늘의 예화] 바다 한가운데서 쓴 찬송 · 2026년 9월 25일
저는 개인적으로 "내 영혼 평안해"라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이상하게 목이 메는 순간이 있습니다. 잔잔한 곡조와 달리, 이 찬송이 태어난 자리는 전혀 잔잔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입니다. 이 찬송을 쓴 사람은 호레이쇼 스패포드라는 시카고의 변호사였습니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였고 시카고 장로교회의 장로였으며, 부흥사 D. L. 무디와도 가까운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1871년, 시카고를 잿더미로 만든 대화재가 일어나면서 그가 투자해 두었던 부동산이 거의 전부 불타 사라졌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은 그였지만, 아내 애나와 네 딸과 함께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다시 일어서려 애썼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873년, 스패포드는 지쳐 있는 가족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유럽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마침 프랑스에서 열리는 무디의 부흥 집회를 돕기로 했던 터라, 온 가족이 함께 프랑스행 증기선 '빌 드 아브르(Ville du Havre)'호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출항을 앞두고 시카고에서 처리해야 할 급한 사업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는 아내와 네 딸 – 매기, 타네타, 애니, 베시 – 을 먼저 배에 태워 보내고, 자신은 일을 마무리한 뒤 뒤따라가기로 했습니다. 부두에서 손을 흔들며 가족을 배웅하던 그 순간까지만 해도, 그는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1873년 11월 22일 새벽, 대서양 한가운데서 빌 드 아브르호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철제 범선 '로크 언(Loch Earn)'호와 충돌했습니다. 배는 불과 12분 만에 침몰했고, 226명이 차가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애나는 정신을 잃은 채 나무 파편을 붙들고 표류하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지만, 네 딸은 모두 그 밤바다에 삼켜지고 말았습니다. 영국 웨일스에 도착한 애나가 남편에게 보낸 전보에는 단 몇 마디만 적혀 있었습니다. "나 홀로 살아남았습니다(Saved alone)." 저는 이 전보 문구를 처음 읽었을 때, 그 짧은 문장 안에 담긴 절망의 무게가 가늠조차 되지 않아 한참을 먹먹하게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스패포드는 그 즉시 아내에게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며칠 뒤 배가 대서양을 건너던 중, 선장이 그를 조용히 불러 지금 지나가는 바로 이 해역이 딸들이 잠든 곳이라고 알려주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갑판에 올라 캄캄한 밤바다를 오래도록 내려다보았습니다. 넷을 한꺼번에 잃은 아버지가 그 바다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저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그의 안에서 터져 나온 것은 원망이 아니라 이 고백이었습니다.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그는 그 밤, 훗날 "When Peace Like a River"라는 제목으로 알려지게 될 찬송의 가사를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고 합니다.
이 가사는 이후 작곡가 필립 블리스의 곡을 만나 "It Is Well with My Soul"이라는 찬송으로 완성되었고,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교회에서 불리고 있습니다. 스패포드 부부는 이후 다시 자녀를 낳았지만 어린 아들을 병으로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또 한 번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부부는 훗날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이야기를 곱씹을 때마다, 신앙이라는 것이 슬픔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패포드는 슬픔을 지운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의 한복판에서도 "내 영혼은 평안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낸 사람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라면 그 갑판 위에서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밤바다 앞에서 끝까지 붙든 것은 자기 감정이 아니라, 상황이 어떠하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아픔이 그의 것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저마다 감당하기 버거운 파도를 만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이 찬송의 가사를 가만히 읊조려 보면 어떨까요. 슬픔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슬픔보다 더 깊은 곳에 계신 분을 신뢰하는 것, 저는 그것이 이 예화가 오늘 저에게 남기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