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화] 라벤스브뤼크에서 내민 손 · 2026년 9월 26일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건 오래전 어느 새벽 기도회에서였습니다만, 그날 이후로 두고두고 잊히지가 않았습니다. 네덜란드의 한 시계방 집안에서 태어난 코리 텐 붐이라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그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나치의 눈을 피해 유대인들을 자신들의 집 벽장 뒤 은신처에 숨겨주고 있었습니다. 발각되면 죽음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그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해 2월, 밀고로 인해 텐 붐 가족은 체포되고 맙니다. 아버지는 체포된 지 열흘 만에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고, 코리와 언니 베시는 여러 수용소를 거쳐 결국 독일의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로 이송됩니다. 여성 수감자들을 위한 곳이었지만, 그 이름에 걸맞은 온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벼룩이 들끓는 막사, 살을 에는 추위, 하루하루 줄어드는 배급. 그런데 신기하게도 언니 베시는 그 벼룩들 때문에 오히려 감시병들이 막사 안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며, 그것조차 감사할 제목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코끝이 시큰해집니다. 사람이 극한 속에서도 저런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요.
베시는 그 수용소 안에서도 늘 말했다고 합니다. 이 담장 안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고, 언젠가 이곳에서 겪은 일들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용서와 치유를 가르치는 간증이 될 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베시는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걸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1944년 12월, 혹독한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수용소 안에서 눈을 감고 만 것입니다. 코리는 언니를 잃은 슬픔과 함께, 자신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남은 나날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서류상의 착오였다는 이유로 코리는 극적으로 풀려나 살아서 그곳을 나오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뒤 코리는 유럽 곳곳을 다니며 자신이 겪은 일과 베시가 남긴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1947년, 독일 뮌헨의 한 교회에서 집회를 마치고 나오던 순간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습니다. 당신의 메시지가 참 은혜로웠다고,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바다 밑에 던지신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코리의 심장이 얼어붙었습니다. 라벤스브뤼크에서 여성 수감자들 앞에 서 있던, 그 잔혹했던 간수들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내밀어진 손 앞에서 코리는 몸이 굳어버렸다고 훗날 고백합니다.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팔이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언니의 마지막 숨소리, 그 막사의 냄새, 그 남자가 휘두르던 채찍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순간이야말로 이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정직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용서했습니다”가 아니라, 도무지 손이 나가지 않았다는 그 고백 말이에요. 코리는 속으로 짧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제 손을 들어 올릴 힘을 주십시오. 저는 이 사람을 용서할 마음이 없지만, 주님의 용서만은 저를 통해 흘러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손이 움직였습니다. 팔을 타고 뭔가 따뜻한 것이 흘러 내려가는 걸 느꼈다고, 그녀는 그렇게 회고했습니다.
그 후로 코리 텐 붐은 전 세계를 다니며 이 순간을 간증했습니다. 자신이 만난 가장 큰 기적은 바다가 갈라지거나 병이 낫는 일이 아니라, 그 손이 움직인 순간이었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후에도 수십 년간 화해와 용서를 전하는 사역을 이어갔고, 198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메시지를 놓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이야기를 곱씹을 때마다, 용서라는 게 마음이 움직여서 손이 따라가는 게 아니라 거꾸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은 여전히 딱딱한데 순종으로 손부터 내미는 것, 그게 진짜 용서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저에게도 도무지 마음이 풀리지 않는 얼굴 하나쯤은 있습니다. 그 얼굴을 떠올리면 여전히 숨이 턱 막히는데, 코리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꼭 감정이 풀려야만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면, 마음이 아직 그 자리에 있더라도 손을 먼저 내밀어 보는 작은 순종을, 저는 오늘도 하나님께 구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