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화] 원수를 용서한 손, 코리 텐 붐의 그날 · 2026년 9월 20일
저는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할 때마다 결국 이 한 장면 앞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1892년 네덜란드 하를럼의 작은 시계방 집안에서 태어난 코리 텐 붐이라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집은 대대로 시계를 고치며 살아온 평범한 가정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하면서 그 평범한 집이 완전히 다른 운명을 짊어지게 됩니다.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자 텐 붐 가족은 자기 집 벽 안에 비밀 공간을 만들어 쫓기는 유대인들을 숨겨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며 여러 사람으로 늘어갔고, 코리와 그녀의 언니 베시는 매일 밤 발각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44년, 결국 밀고로 인해 온 가족이 체포되고 맙니다. 코리와 베시는 악명 높은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는데, 그곳은 여성들만 수용하던 곳으로 위생도 식량도 최악이었습니다. 이가 들끓는 나무 침상 위에서 두 자매는 몰래 숨겨온 작은 성경을 꺼내 서로에게 읽어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전해집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늘 마음이 저릿합니다. 베시는 몸이 약해 수용소 생활을 오래 버티기 힘든 상태였는데도, 오히려 코리에게 “우리가 여기서 겪는 이 고통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이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깊다는 걸 증명하는 게 우리 몫일지도 몰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국 베시는 1944년 12월, 그 수용소에서 영양실조와 병으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코리는 서기의 기록 착오 덕분에 그로부터 얼마 뒤 극적으로 풀려났고, 훗날 이 일을 두고 “순전한 하나님의 실수 같은 은혜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코리는 유럽 각지를 다니며 자신이 겪은 일과 용서에 대해 간증하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47년, 뮌헨의 한 교회에서 강연을 마치고 내려오던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다가와 손을 내밉니다. 그 얼굴을 본 순간 코리의 온몸이 얼어붙었습니다. 라벤스브뤼크에서 여성 수감자들을 가장 잔혹하게 다루던 간수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며,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코리는 그 손을 마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시가 그 손 아래서 겪었던 고통이, 침상 위의 신음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몇 초,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을 그 침묵의 순간,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기도했다고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이 사람을 용서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용서를 제 손에 쥐어주십시오.” 그리고 팔을 뻗어 그 손을 잡았을 때, 자신의 것이 아닌 뜨거운 사랑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고 그녀는 훗날 여러 책과 강연에서 되풀이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날 이후 코리 텐 붐은 남은 평생을 용서와 화해의 메신저로 살았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하이딩 플레이스》는 이후 영화로도 제작되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전해졌고, 그녀는 198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각국을 다니며 이 이야기를 증언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용서라는 게 결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다시 깨닫습니다. 코리는 그 순간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마음이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손을 뻗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뜨끔합니다. 저도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때마다 마음이 정리되기를, 감정이 풀리기를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아서요. 어쩌면 용서란 마음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시키지 않아도 순종으로 내미는 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이름 하나가 남아있다면, 감정이 준비되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손을 뻗어보는 건 어떨까요. 그 손끝에서 코리가 느꼈던 그 힘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흘러들어올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