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화] 바오밥나무 아래 묻은 아내, 그러나 멈추지 않은 걸음 · 2026년 9월 14일
1862년 초, 아프리카 남동부를 가로지르는 잠베지강 하류의 슈판가라는 작은 마을에 한 여인이 도착했습니다. 이름은 메리 모팟 리빙스턴. 아프리카 선교사의 딸로 태어나 자랐고, 동시에 ‘아프리카의 탐험가’로 불리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아내였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리빙스턴이라는 크고 화려한 이름 뒤에 가려진 한 여인의 인생이 유독 마음에 걸렸습니다. 남편은 잠베지강과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그 곁에서 메리는 오랜 세월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낯선 땅을 떠돌며 그저 기다리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세상은 남편의 업적을 기억하지만, 정작 그 곁을 지킨 아내의 이름은 잘 기억하지 않습니다.
결혼한 지 17년, 메리는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 오지를 함께 다니며 여러 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아이를 낳고, 병과 굶주림을 견디고, 남편이 몇 달씩 탐험을 떠나면 홀로 아이들을 돌보며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1852년, 어린 자녀들의 안전을 위해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낯선 영국 생활은 그녀에게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뒤섞인 나날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던 중 1862년, 그녀는 마침내 다시 아프리카로 건너가 잠베지 탐험대에 합류한 남편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근 십 년 가까운 이별 끝의 재회였습니다. 그 짧은 기쁨이 두 사람에게 얼마나 컸을지, 저는 감히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슈판가에 도착한 지 채 몇 주도 지나지 않아, 메리는 그 지역에서 흔했던 말라리아 열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리빙스턴 자신이 의사였음에도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다 했지만, 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깊어졌습니다. 며칠 동안 그는 뜬눈으로 아내의 침상 곁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손을 잡아도, 물수건을 갈아줘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강 건너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사자와 마주치고 열대병과 굶주림 속에서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던 그 단단한 사람이, 이때만큼은 속절없이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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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4월 27일, 메리는 슈판가에서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리빙스턴은 그날 일기에 자신이 얼마나 깊은 슬픔에 잠겼는지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평생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했던 그가, 그 순간만큼은 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잠베지강가에 서 있던 커다란 바오밥나무 아래에 손수 아내를 묻었습니다. 대륙을 가로지르듯 거침없이 걸어온 탐험가가 나무 한 그루 아래 아내를 묻고 돌아서던 그 뒷모습을, 저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자꾸 상상하게 됩니다.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슬픔은 컸지만, 리빙스턴은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후로도 11년을 더 아프리카에 머물며 탐험과 선교, 그리고 노예무역을 끝내기 위한 싸움을 묵묵히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1873년 5월, 지금의 잠비아 치탐보 마을에서 숨을 거둘 때, 그의 곁을 지키던 아프리카인 동료들은 그가 침대 곁에 무릎을 꿇은 채 마치 기도하는 자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이야기를 곱씹을 때마다, 위대한 사역 뒤에는 언제나 말없이 견뎌낸 누군가의 눈물이 함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메리 리빙스턴의 이름은 남편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감내한 그 긴 기다림과 이별,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의 헌신이 없었다면 리빙스턴이 남긴 발자취도 결코 온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실 앞에서도 그가 다시 일어나 걸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묘하게 위로가 됩니다. 슬픔을 애써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슬픔에 완전히 잠식당하지는 않고 자신이 부름받은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신앙을 가진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떠나보낸 자리에 서 계신 분이 있다면, 바오밥나무 아래 무릎을 꿇었을 그의 뒷모습을 한 번쯤 떠올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슬픔 다음에도 걸음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 이야기가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걸음을 혼자 걷지 않으셨으면, 또 저 역시 그렇게 걷고 싶다는 바람을 품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