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화] 구둣방 벽의 세계지도 · 2026년 9월 22일
1780년대, 영국 노샘프턴(Northampton)의 작은 구둣방을 떠올려 봅니다. 좁은 작업대 앞에 한 청년이 앉아 가죽을 두드리며 구두를 깁고 있습니다. 이름은 윌리엄 케리. 정규 교육이라곤 거의 받지 못한 채 열네 살 때부터 구두 수선 일을 배운 가난한 제화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작업대 위 벽에는 조금 이상한 것이 붙어 있었습니다. 종이를 이어 붙여 손수 그린, 커다란 세계지도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처음 상상했을 때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하루 종일 가죽 냄새와 망치질 소리에 파묻혀 살면서도, 고개를 들면 늘 세계가 걸려 있었던 셈이니까요. 구둣방을 찾는 손님 중에는 그 지도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가난한 제화공이 가본 적도 없는 먼 나라들의 지도를 벽에 붙여 놓고 있으니, 누군가는 딱하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케리는 구두를 만들면서 틈틈이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까지 독학했습니다. 손님이 뜸한 시간이면 제임스 쿡 선장의 항해기를 펼쳐 들고 남태평양 섬들의 이야기를 읽었고, 그때마다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채 살다 죽는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벽에 걸린 지도 위 나라 이름들을 손끝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기도하곤 했습니다. 인도, 남태평양, 아프리카… 가본 적도 없고 갈 방법도 없는 땅이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을 알아준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1780년대 어느 날, 케리가 속한 목회자 모임에서 그는 조심스럽게 이방인 선교의 필요성을 꺼냈습니다. 그러자 나이 지긋한 선배 목사 한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단호히 말을 잘랐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젊은이, 앉으시오.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면 그분이 스스로 하실 것이오. 당신이나 나의 도움 없이도 말이오.” 방 안이 순간 조용해졌을 겁니다. 저라면 그 자리에서 얼굴이 화끈거려 다시는 입을 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케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후 몇 해에 걸쳐 밤늦도록 자료를 모으고, 세계 각지의 인구와 언어와 종교 현황을 하나하나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것이 1792년에 펴낸 “이교도의 회심을 위해 수단을 사용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관한 연구”라는 소책자였습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거의 자비를 들여 찍어낸 얇은 책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가 지도 앞에서 품어온 오랜 기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5월 30일, 노팅엄의 한 예배당 강단에 선 케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큰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시도하라.” 그 한 문장이 청중의 마음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설교 직후, 얼마 전 그를 주저앉혔던 것과 같은 부류의 모임에서 마침내 침례교 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의 설립이 결의되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늘 숨을 고르게 됩니다. 자신을 냉대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결국 자신이 외쳤던 말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을 직접 지켜본 것입니다.
이듬해인 1793년, 케리는 마침내 배를 타고 인도로 떠났습니다. 그 후로 40여 년,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자녀를 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림을 꾸려야 했으며, 십수 년에 걸쳐 공들여온 번역 원고 뭉치가 인쇄소 화재로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되는 좌절도 맛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성경을 벵골어를 비롯한 수십 개 인도 언어로 번역했고 학교를 세웠으며 과부를 산 채로 함께 화장하던 순장(殉葬) 풍습 폐지에 앞장섰습니다. 오늘날 그는 ‘근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이야기를 곱씹을 때마다, 가장 무력한 순간에 우리를 주저앉히는 말이야말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다는 걸 생각하게 됩니다. “당신 도움 없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말, 틀린 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케리 없이도 하실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도 케리는 그 말을 듣고 물러서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작은 몫을 끝내 붙들었습니다. 어쩌면 신앙의 크기란 거창한 확신의 크기가 아니라, 거절당한 자리에서도 조용히 지도를 다시 펼쳐 보는 끈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작업대 위에는 어떤 지도가 걸려 있으신가요? 저는 요즘도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