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화] 빈 그릇 앞에서 드린 감사 · 2026년 9월 13일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게 신학교 시절 우연히 집어 든 낡은 전기 한 권에서였습니다. 조지 뮬러(George Müller). 19세기 영국 브리스톨에서 평생 수천 명의 고아를 돌본 사람으로, 지금도 설교 중에 자주 인용되는 인물이지요. 1836년, 뮬러는 브리스톨의 애쉴리 다운(Ashley Down) 지역에 고아원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영국 산업도시들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거리에 넘쳐났고, 뮬러는 “하나님께 구하고 사람에게 구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뒤 오직 기도로만 운영비를 마련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정기 후원 시스템도, 든든한 재단도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 수백 명의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을 그날그날 구해야 하는, 살얼음판 같은 살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정말로 창고가 텅 비고 말았습니다. 빵도 없고 우유도 없었습니다. 조리실을 맡은 직원이 다급하게 뮬러를 찾아와 “선생님, 아침으로 낼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이미 식당 긴 나무 테이블에 줄지어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텅 빈 그릇과 컵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이들을 방으로 돌려보내거나, 최소한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을 상황입니다. 그런데 뮬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이들 앞에 서서 평소와 다름없이 식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음식에 감사드립니다.” 눈앞의 그릇은 여전히 비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곁에 서 있던 직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서로 눈치만 보았을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기도가 이어지는 그 몇 분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무척 길게 느껴졌을 겁니다.

기도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연 직원 앞에 서 있던 사람은 동네 빵집 주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정이 넘도록 잠이 오지 않았고, 마음에 계속 걸리는 게 있어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한밤중에 일어나 빵을 여러 판 더 구웠고, 그것을 이 새벽에 고아원으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또 한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번에는 우유 마차를 끌던 마부였는데, 하필 고아원 바로 앞에서 마차 바퀴가 부러져 더는 갈 수 없게 되었다며, 우유가 상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빵과 우유가, 정확히 그 순간, 그 문 앞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갓 구운 빵과 신선한 우유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뮬러는 이 일을 훗날 자신의 일기와 “응답받은 기도들(Answers to Prayer)”이라는 책에 기록해 두었고, 이후로도 비슷한 방식의 응답을 수십 년간 거듭 경험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그렇게 평생을 통해 수천 명의 고아를 먹이고 길러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빈 그릇 앞에서 드린 감사’라는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사실 우리는 다 채워진 다음에야 감사하는 데 익숙하잖아요. 통장에 여유가 좀 생겼을 때, 일이 잘 풀렸을 때, 그제야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곤 하죠. 그런데 뮬러는 정반대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 순간에 오히려 감사부터 드렸습니다. 저도 요즘처럼 형편이 넉넉하지 않게 느껴질 때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마음이 한 번 더 다잡아지는 걸 느낍니다. 어쩌면 믿음이라는 건 다 갖춰진 뒤에 감사하는 게 아니라, 텅 빈 손을 그대로 들고서 먼저 감사를 시작하는 용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그릇이 비어 보인다면, 그 비어 있음 앞에서 먼저 기도를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