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화] 브라이튼 해변에서 드린 스물넷의 기도 · 2026년 9월 24일
저는 이 이야기를 알게 된 뒤로 해변을 걸을 때마다 종종 이 장면이 떠오릅니다. 1865년 영국, 중국 내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는 건강이 무너진 채 본국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6년 넘게 중국에서 사역하며 상하이와 닝보를 오갔지만, 몸이 견디지 못해 결국 짐을 싸야 했습니다. 문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그가 떠나온 중국 내륙에는 복음을 들어본 적 없는 수천만 명이 살고 있었고, 그 사실이 그를 밤낮으로 짓눌렀습니다.
런던에서 그는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이어갔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일마다 예배당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그는 훗날 회고했습니다. 사람들은 찬송을 부르고 평안해 보이는데, 자신은 중국 내지의 11개 성(省)에 선교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요양차 머물던 브라이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결국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혼자 해변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걸음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의 속에서는 두 가지 목소리가 다투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이건 불가능하다”는 목소리였습니다. 몸도 성치 않은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새로운 선교회를 시작하겠다는 것인지, 또 누구에게 후원을 부탁할 수 있단 말인지 — 그는 이미 여러 차례 그런 부탁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 모든 부담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만 맡기라는 조용한 확신이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이 갈등 속에서 서성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변에서, 테일러는 마침내 무릎을 꿇듯 마음을 정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로, 오직 기도로만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아주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 중국 내지의 열한 개 성과 몽골, 아직 선교사가 없는 그 땅들을 위해 숙련되고 헌신된 일꾼 스물넷을 보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는 그날의 날짜와 함께 이 기도 제목을 자신의 성경 여백에 적어 두었습니다. “1865년 6월 25일, 브라이튼에서, 스물넷의 숙련되고 헌신된 일꾼을 위해 기도하다.” 짧은 한 줄이었지만, 그 한 줄이 그의 남은 생애 전체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기도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가 세워졌고, 이듬해인 1866년 라머무어호에 몸을 실은 첫 선교사들이 중국을 향해 떠났습니다. 테일러는 평생 단 한 번도 공개적으로 후원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고, 이 ‘믿음 선교’의 모델은 이후 수많은 선교 단체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1905년, 중국내지선교회는 800명이 넘는 선교사와 수백 개의 사역지를 거느린 단체로 자라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대목에서 늘 마음이 멈춰 섭니다. 테일러를 움직인 것은 거창한 전략이나 자금 계획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짐을 홀로 끌어안고 있던 사람이 마침내 그것을 내려놓은 한 걸음이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도 저마다 마음속에 ‘이건 나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되뇌는 짐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결단이 아니라, 그 해변에서처럼 걸음을 멈추고 솔직하게 무릎 꿇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물넷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로 기도했던 테일러를 보면서, 저도 제 기도가 너무 막연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의 마음에도, 혼자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작은 틈이 생기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