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화] 사슬보다 질겼던 사랑 · 2026년 9월 3일
1824년, 지금의 미얀마인 버마의 왕도 아바(Ava). 저는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먼저 그 도시의 습하고 무거운 공기부터 그려보게 됩니다. 미국에서 온 젊은 선교사 애도니럼 저드슨은 버마어 성경 번역에 매달려 있었고, 아내 앤 해서웰 저드슨 곁에는 이미 어린 자녀를 하늘로 먼저 보낸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영국과 버마 사이에 전쟁이 터지면서 미국인이었던 저드슨은 영국 쪽 스파이로 의심을 받아 하루아침에 사슬에 묶인 채 ‘레마윤’이라 불리던 사형수 감옥으로 끌려가고 맙니다.
그 감옥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참혹했다고 전해집니다. 창문 하나 없는 방에서 죄수들은 발목에 무거운 쇠고랑을 겹겹이 찬 채 지냈고, 밤이 되면 대나무 장대에 발이 묶여 몸이 바닥에서 들린 자세로 잠을 청해야 했다고 합니다. 저드슨은 그런 감방에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시간 동안 더 고단한 싸움을 벌인 사람은 오히려 감옥 밖의 아내 앤이었습니다. 앤은 갓 태어난 딸 마리아를 품에 안고, 뜨거운 태양 아래 몇 시간씩 걸어 감옥 근처 관리들을 찾아다니며 남편의 석방을 호소하고 또 호소했습니다.
앤 자신도 몸이 성치 않았습니다. 출산의 여파로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음식을 마련해 간수들에게 손에 쥔 것을 내밀며 남편에게 밥 한 그릇을 전했다고 전해집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늘 마음이 저려옵니다. 거창한 기도문도, 눈물 어린 편지도 아니고, 그저 매일 그 먼 길을 걷고 또 걸었던 한 여인의 뒷모습이 그려지거든요. 감옥 안의 저드슨에게 그 밥그릇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자신이 잊혀지지 않았다는 유일한 증거였을 겁니다.

그렇게 스무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저드슨은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납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통역자가 필요했던 버마 조정이 그를 불러낸 것이 계기였습니다. 쇠사슬 자국이 선명한 발목으로 다시 가족 곁에 돌아온 그 순간, 두 사람은 마침내 함께 숨 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훈훈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그토록 모진 시간을 함께 견뎌낸 앤은, 남편이 풀려난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은 1826년 10월,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어린 딸 마리아마저 어머니를 뒤따라갔습니다.
저드슨은 그 상실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는 버마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딸의 무덤이 있는 그 땅에 남아 번역 작업을 이어갔고, 1834년 마침내 버마어 성경 전체를 완성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1850년 무렵, 버마에는 수천 명의 개종자와 수십 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지금도 미얀마 침례교회는 그를 ‘아버지’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마음을 붙잡습니다. 저드슨 부부의 이야기는 ‘끝까지 견디면 다 좋아진다’는 식의 쉬운 위로가 아니거든요. 앤은 그 끔찍한 시간을 다 이겨내고도 결국 남편 곁을 너무 일찍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저드슨은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신앙이란 결국 원하는 결말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결말을 알 수 없어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견디고 있는 이유가 눈에 보이는 결과로 곧장 증명되지 않더라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저드슨의 삶이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 그 자리도, 언젠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열매 맺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