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화] 두 번 도망친 아이가 찾아간 문 · 2026년 9월 8일
1901년, 인도 남부 팁니벨리 지방의 작은 마을 도나부르. 아일랜드 출신 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은 그해 몇 달째 한 가지 소문을 좇고 있었습니다. 힌두 사원에 ‘신에게 바쳐진 아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들 중 상당수가 사원 안에서 원치 않는 삶을 강요당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스물이홉 여자 선교사 혼자서 그 거대한 관습에 맞서기로 결심했다는 사실 자체가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대체 무슨 확신이 있었기에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해 어느 날 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카마이클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름은 프리나. 사원에서 도망쳐 나온 길이었습니다. 붙잡혀 되돌려 보내졌던 적이 이미 한 번 있었고, 그때 벌로 손바닥에 뜨거운 인두 자국이 남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다시 도망쳤습니다. 밤새 낯선 길을 헤매다 우연히, 혹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카마이클이 사는 곳까지 닿은 것입니다. 카마이클은 문을 열고 떨고 있는 아이를 보았을 때의 심정을 훗날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아이 하나를 돌려보내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입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사원 쪽 사람들이 아이를 찾으러 왔고, 지역 사회 안에서는 외국인 선교사가 인도의 종교 관습에 함부로 손댄다는 반발이 거셌습니다. 카마이클은 프리나를 숨기지 않고, 그렇다고 순순히 내주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그날부터 남은 평생을 이 일에 걸기로 결정합니다. 인도 아이들처럼 사리를 두르고 피부를 짙게 물들이기까지 하며 마을 구석구석을 다녔고, 위협과 소송, 거짓 소문에 시달리면서도 한 아이 한 아이를 데려오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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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장면은 프리나를 처음 맞아들인 그날 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물아홉 살, 타국에서, 아무 조직적 지원도 없이, 그저 문 앞에 선 상처투성이 아이 하나를 외면하지 못해서 시작된 결단이었습니다. 카마이클은 그 순간을 두고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나를 선택한 것 같았다’고 회고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뭉클해집니다. 거대한 사명감이 아니라, 눈앞의 작은 얼굴 하나를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평생의 헌신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말입니다.
이후 도나부르 펠로우십은 계속 자라났습니다. 카마이클은 195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55년간 단 한 번도 안식년으로 인도를 떠나지 않았고, 그 사이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 공동체를 거쳐 갔습니다. 도나부르 펠로우십은 지금도 인도에서 아동 보호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이야기를 곱씹을 때마다, 큰 사명은 대개 작은 순간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카마이클은 인도의 관습 전체를 바꾸겠다고 나선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문 앞에 선 아이 하나를 그날 밤 돌려보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도 오늘 마주치는 작은 부탁이나 불편한 요청 하나를,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거창한 사명감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을 통해 일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 내 앞에 와 있는 그 ‘한 아이’가 누구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