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화] 용서의 악수 · 2026년 9월 10일
1947년, 전쟁이 끝난 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독일 뮌헨의 한 교회. 코리 텐 붐이라는 네덜란드 여성이 강단에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유대인들을 자기 집 다락방에 숨겨주다가 나치에 발각되어, 언니 베시와 함께 악명 높은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던 생존자였습니다. 언니는 결국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고, 코리 혼자 서류 착오 덕분에 기적적으로 풀려나 살아남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녀는 독일 곳곳을 다니며 ‘하나님은 용서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는데, 저는 이 대목에서부터 이미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자신의 언니를 죽게 만든 바로 그 나라, 그 사람들 앞에서 용서를 이야기한다는 게 과연 쉬웠을까요.
그날 강연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코리는 늘 하던 대로 십자가의 용서에 대해 이야기했고, 예배가 끝난 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던 전후 독일의 교회당,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 줄을 서서 그녀와 악수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줄 뒤쪽에서 한 중년 남자가 코트를 손에 쥔 채 다가오는 게 보였습니다. 순간 코리의 몸이 굳었습니다. 그 얼굴을, 그녀는 잊을 수 없었습니다. 라벤스브뤼크의 샤워실 앞에서 벌거벗겨진 여성 수감자들을 감시하던 간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언니와 자신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걸어야 했던 그 복도에 서 있던 얼굴이 지금 눈앞에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눈빛만큼은 코리의 기억 속 그대로였다고 합니다.
남자가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자신은 그 시절 라벤스브뤼크에서 일했던 사람이며, 이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그때 저지른 잔인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안다고.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에게도 직접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 순간 코리는 손을 내밀지 못하고 몇 초간 그대로 서 있었다고 합니다. 수천 명 앞에서 용서를 설교해온 그녀였지만, 정작 그 손을 잡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분노와 냉기가 그대로 올라왔고, 팔은 옆구리에 붙은 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코리는 그 순간을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자신은 속으로 “예수님, 저를 도와주세요. 제가 손을 들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 감정도, 아무 따뜻함도 느끼지 못한 채로, 그저 의지 하나로 팔을 들어 그 남자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손을 맞잡는 순간, 놀랍게도 팔을 타고 뭔가 따뜻한 것이 흘러들어와 가슴 전체로 퍼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순간을 ‘용서는 감정이 다 정리된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내딛는 한 걸음 다음에 감정이 뒤따라오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코리 텐 붐은 이후로도 전 세계를 다니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고, 이 뮌헨에서의 순간은 그녀의 자서전 ‘The Hiding Place’를 통해 가장 널리 알려진 장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체제에 몸담았던 사람의 손을 마주 잡은 그 몇 초가, 그녀의 나머지 삶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된 셈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그 대목에서 늘 멈추게 됩니다. 용서라는 게 원래 그런 거구나, 마음이 다 풀려야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이 하나도 안 풀린 채로도 그냥 손을 내밀어야 하는 순간이 있는 거구나, 싶어서요. 저도 누군가를 용서해야 했던 순간에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는 핑계로 손 내미는 일을 미룬 적이 참 많았습니다. 마음이 정리되고 나면 그때 용서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곤 했는데, 돌아보면 그 마음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코리의 이야기를 보면, 준비된 마음이 손을 내밀게 하는 게 아니라 내민 손이 마음을 데워준다는 걸 알게 됩니다. 순서가 저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던 셈이지요. 오늘 혹시 마음 한구석에 아직 손을 내밀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면, 감정이 정리되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팔을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그 팔을 통해 흘러드는 온기는, 어쩌면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라 그저 우리 몫의 한 걸음을 내딛을 때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