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화] “당연히 들어오세요” 그 한마디가 지킨 마을 · 2026년 9월 15일
저는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신앙 서적들을 뒤적이다가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났습니다. 프랑스 중남부,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에 자리한 작은 마을 르 샹봉쉬르리뇽(Le Chambon-sur-Lignon). 1940년,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에는 비시 괴뢰정권이 들어섰고, 유대인들을 색출해 수용소로 실어 보내는 일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외딴 산골 마을만큼은 조금 달랐습니다. 주민 대부분이 16세기부터 박해받아온 위그노(프랑스 개신교도)의 후손들이었고, 그들을 이끌던 목사 앙드레 트로크메와 그의 아내 마그다 트로크메가 있었습니다.
트로크메 목사는 평소 설교에서 “폭력에는 영혼의 무기로 저항해야 한다”고 가르치던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이 깊어지고 프랑스 곳곳에서 유대인 검거령이 떨어지자, 낯선 이들이 하나둘 이 산골 마을로 흘러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한두 명이었습니다. 밤에 몰래 국경을 넘어온 사람, 파리에서 기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온 가족, 부모를 잃고 혼자 떠돌던 아이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기 집 다락방을, 헛간을, 농장 뒤편의 빈방을 내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에 관해 전해지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저녁, 마그다 트로크메가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가 보니, 눈발을 그대로 맞으며 얼어붙은 채 서 있는 유대인 여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갈 데 없이 숨을 곳을 찾아 헤매다 이 집까지 흘러온 것이었습니다. 마그다는 망설임 없이 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연히 들어오세요(Naturally, come in).” 그 한마디는 이후 이 마을 전체가 지켜나간 원칙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오는 사람을 묻지 않고, 재우지 않을 이유를 찾지 않는다는 것.

이 일이 있고 난 뒤, 르 샹봉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피난처가 되어갔습니다.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주는 사람, 국경 너머 스위스까지 안내하는 청년들, 아이들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학교에 등록시켜 기르는 농가들까지—침묵의 조직망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비시 정권의 경찰과 독일 게슈타포가 여러 차례 마을을 급습하고 조사했지만, 놀랍게도 이 작은 마을에서는 단 한 명도 밀고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은 “그런 사람은 본 적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숨겨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입을 다물었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4년 넘게 이런 일이 계속되었다는 것이, 저는 지금도 잘 믿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르 샹봉쉬르리뇽과 인근 마을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3천 명에서 5천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을, 그중 상당수는 어린아이들을 목숨을 걸고 지켜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훗날 이 마을 전체를 “열방의 의인”으로 예루살렘 야드 바셈에 기록했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이 칭호를 받은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마그다의 그 한마디, “당연히 들어오세요”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거창한 결단의 말이 아니었거든요. 누군가에게는 그냥 반사적으로 나온 인사말 정도로 들릴 수도 있는 그 말이, 결국 수천 명의 생명을 살리는 시작점이 되었다는 게 마음을 울립니다. 트로크메 부부도, 마을 사람들도 처음부터 “우리가 역사에 남을 구원의 공동체가 되자”고 결심하고 시작한 게 아니었을 겁니다. 그저 문 앞에 선 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제 자신을 자주 돌아보게 됩니다. 제 앞에 찾아온 작은 도움의 요청들을, 저는 얼마나 자주 “당연히”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거창한 신앙의 결단은 어쩌면 매일의 작은 문 앞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