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예화] 헐 항구에서 건넨 마지막 은화 · 2026년 9월 29일
1853년 겨울, 스물한 살의 허드슨 테일러는 영국 헐(Hull)이라는 항구 도시에서 의사의 조수로 일하며 훈련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훗날 중국내지선교회를 세우고 평생을 중국 선교에 바치게 될 청년이었는데, 이 무렵부터 이미 자신에게 한 가지 원칙을 정해두었다고 합니다. 월급을 미리 달라고 조르지 않고, 빚을 지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만 의지해서 살아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스물한 살짜리가 저런 결심을 실제로 실천하며 살았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을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해 어느 추운 저녁, 그의 주머니에는 반 크라운짜리 은화 한 닢, 그것이 가진 전부였습니다.
그날 밤 한 낯선 사람이 찾아와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남편은 배를 타고 나가 있어 집을 비웠고, 아내 혼자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가정이었는데, 그 집 아이 하나가 몹시 앓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테일러는 곧바로 따라나섰습니다. 어두운 골목을 지나 도착한 방 안에는 불기운조차 변변치 않았고, 열에 들뜬 아이는 힘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방을 나서려는 순간, 그는 이 가족이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주머니 속 동전으로 향했습니다. 문제는 그 동전이 다름 아닌, 그가 가진 마지막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의 마음속에서는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졌습니다. ‘저 돈을 주고 나면 나는 내일 빵 한 조각 살 돈도 없다’는 생각과,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정작 손에 쥔 마지막 동전 하나를 내놓지 못한다면, 그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번갈아 그를 붙들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결국 발길을 돌려 그 집 문을 다시 두드렸고, 자신의 마지막 은화를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그의 전기에는, 손을 펴는 그 순간 형언하기 힘든 평안이 밀려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늘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내어준다는 것이 이렇게나 두렵고, 동시에 이렇게나 후련한 일일 수 있다는 게 낯설면서도 뭉클했습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정말이지 단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른 시각,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보낸 이의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은 작은 소포 하나가 놓여 있었고, 풀어보니 장갑 한 켤레와 함께 금화 몇 닢이 곱게 싸여 있었습니다. 전날 밤 그가 내어준 것보다 훨씬 넉넉한 액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하룻밤의 경험은 훗날 그가 중국이라는, 당시로서는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던 땅으로 나아갈 때마다 붙들었던 믿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셀 수 없는 재정적 위기 앞에서 그는 헐의 그 겨울밤을 떠올리며 걸어갔고, 그렇게 세워진 중국내지선교회는 이후 수백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단체로 자라났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저는 이 이야기를 곱씹을 때마다, 제가 가진 마지막 것을 내어줄 수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나누겠다’고 미루며 살아가지 않나요. 그런데 테일러의 이야기는 그 여유가 생긴 다음이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 내미는 손이야말로 진짜 믿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라고 매번 그렇게 살고 있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적어도 한 번쯤은, 계산을 멈추고 손을 펴보고 싶어집니다.